머리말
부족한 실력이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족부학에 대해 강의하다 보니 마지막에 꼭 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오늘 강의 들어보니 매우 흥미로운데,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될까요?”
이 질문을 받으면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책을 권하면 될까? 저 책에도 좋은 내용이 많은데.... 내가 족부학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 했던 생각이었다. 늘 답은 비슷했다. “족부학은 여러 학문에 조금씩 녹아 있는 학문입니다. 모든 곳에 있지요.” 해부학은 이 책이 자세하게 나와 있고, 생역학은 이 책이 잘 설명되어 있고, 보행분석은 이 책이 낫고, 전체적인 것을 보려면 이 책을, 세부적인 것을 보려면 이 책을.... 그러면서 책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공부할 것이 너무 많으니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늘 아쉬웠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많은 선생님들이 임상에서 족부학 개념을 적용하며 진료하면 참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텐데....
10년쯤 전에도 출판사에서 족부학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내 실력에 무슨 책을.”이라며 거절했었다. 지금 내가 환자를 보는 술기도 한해, 한해 달라지고 있는데, 지금의 실력이 과연 다른 선생님들께 도움이 될지 많은 걱정이 되었다. 그 이후 매월 족부학 강의를 진행하며 교재를 만들게 됐고 조금씩, 조금씩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고, 조금씩 다듬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매월 해오던 강의를 멈추게 되며, 족부학 책에 대한 필요성이 더 절실했었다. 마침 책을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아직도 내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20년의 세월 동안 임상에 적용해온 족부학 개념을 정리해 보는 것이 헛된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말만 했었다. 이제는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 글을 쓰게 됐다. 20년쯤 후에 또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보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히포크라테스께서도 “걷는 것보다 좋은 약은 없다”라고 하셨고, 동의보감에도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라고 했다. 우리가 걷는다는 행위를 너무 무시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가며 질병 자체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건강의 유지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 정상적인 보행의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파킨슨병 같이 심하게 보행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인지기능 장애, 치매의 초기에도 보행 패턴이 흐트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조기 발견 조기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족부학 책을 쓰면서, 이 책을 읽는 여러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외래에서 진료할 때 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서 있는 자세와 걷는 동작만 보고도 그 사람의 병을 짐작할 수 있고, 굳이 약, 주사를 쓰지 않고 자세와 보행만 고쳐도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처음에는 나도 이게 말이 되냐며 웃었지만, 이젠 그 의미를 안다. 그래서 환자는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난 이 책이 의학서적이라기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학책이었으면 좋겠다. 족부학은 네발에서 이족보행으로의 인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족부학에 비판적인 선생님들의 의견도 많이 들었다. 다 맞는 말씀이었다. 족부학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분명히 아니다. 나도 늘 경계하는 바다. 책을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모든 병을 족부학으로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의사가 많이 아는 것이 환자에게 수많은 치료 방법 중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닐까?
Primum non nocere (Do no Harm)! 환자를 고치진 못하더라도 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히포크라테스께서 하신 말이다.
바르게 서고, 바르게 걷는 것을 권하는 것이 환자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줄까? 더 양보해서, 족부학이 치료 효과가 없다면 부작용도 없는 것이 아닌지. 일부 국가에서 보조기 치료를 국가 보험의 영역에서 지원하는 것이 나라가 바보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수술과 같은 비가역적인 치료에 앞서 족부학적 치료 개념을 한 번쯤 고려해 보는 것이 절대 손해는 아닐 것이다.
운동 삼아 한강에 자주 나간다.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 모든 사람들이 건강히 잘 걸었으면 좋겠다.
2021년 10월
최 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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